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부사골로 승격시킨 공예태후 임씨 (恭睿太后 任氏)

공예태후 임씨
주소
관산읍 당동길 6-25
전화
--
추천
3
이용시간
상시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에서 태어나서 고려 17대왕인 임종의 비가 되신 공예태후 임씨, 그녀는 장흥의 명칭과 이 고을을 부사골로 승격시키신 장흥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고려 17대왕 인종(仁宗)의 비(妃)이다. 1109년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성은 임(任)씨이고 중서령 원후(元厚)의 딸이며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외손녀이다. 태후가 탄생하던 날 저녁에 이위의 꿈에 황색의 큰 깃발이 집의 중문에 세워져 깃발의 끝이 궁궐의 용머리에 걸쳐 나부끼므로 외조부가 태후를 몹시 사랑하였다. 태후가 15세에 이르자 평장사 김인규(金仁揆)의 아들에게 시집가게 되었으나 혼인하는 날 저녁 갑자기 중병에 들어 죽어가게 됨으로 혼인하지 못하였다.

이후 1126(인종4) 이자겸(李資謙)이 물러나고 그의 딸이 폐비가 되자 태후가 연덕궁주(延德宮主)로 추천되었다. 태후가 추천된 것은 폐비이씨가 친정으로 가던 날 인종왕이 꿈을 꾸니 폐비가 참깨(壬子) 5되와 노란 해바라기씨(黃葵) 3되를 주고 가더라는 것이다. 이에 축준경(拓俊京)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후비(后妃)로 임시를 들일 징조요, 다섯이란 아들을 말하고 누런 해바라기씨는 그중 세아들이 왕이 될 것'이라는 상서로운 꿈이란 해몽이 있어 태후로 추천되었다.

1127년 태후가 의종(毅宗)을 낳으니 왕이 기뻐하며 태후 집에 은기(銀器)들을 하사하고 태후를 극히 총애하여 1129년 왕비로 책봉하였다. 이후 왕자 경(暻)과 명종(明宗)을 잇따라 낳으므로 인종은 왕비를 위해 수시로 은전을 베풀었으며 왕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왕이 소복을 입는 예를 갖추었다.

태후는 의종(毅宗).경(暻).명종(明宗).충희(沖曦).신종(神宗) 다섯형제와 승경(承慶).덕령(德寧).창락(昌樂).영화(永和) 네공주를 낳았고 의종이 왕에 즉위하자 태후를 왕태후(王太后)로 삼았다.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며, 순능(純陵)에 장사하고 시호를 공예태후(恭睿太后)라 하였다.

이듬해 금(金)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제사를 지냈다. 인종왕은 왕자가 탄생될 때마다 태후에 대한 은전을 베풀어 우리 고을 명칭도 '길이 흥할 고장'이라하여 '長興'이라 이름지어 하사했다고 전한다.

관산읍 당동길 6-25

최종업데이트
2024.11.21